ロゴ

メイン画像

説 教ページ

2024年 12月 8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4年12月8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ヤコブ(야고보서) 1章 22~25節
〇讃    頌    讃頌歌 25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16 (待降節[2])
〇讃    頌    讃頌歌 101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7章 24~29節
〇説   教    「揺るがない人生の土台
                 (흔들리지 않는 삶의 토대)」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04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4年 12月 8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揺るがない人生の土台」
          マタイによる福音書 7章 24~29節


 「山上の説教」をこれまで聞いて来ましたが、今日で終わります。イエスさまが「山上の説教」の最後に語られた譬えは、簡潔でとても分かりやすい内容です。誰だって、岩の上に家を建てた方が良いことは分かります。けれども、そういうことを自分の人生設計に当てはめて考えてみたことがあるかどうかは別問題です。


 イエスさまは「わたしのこれらの言葉を聞いて行う者は皆、岩の上に自分の家を建てた賢い人に似ている」(24節)と言われます。
 この「わたしのこれらの言葉」とは、具体的には「山上の説教」の教え全体を指していますが、イエスさまの教え全体だと言ってよいと思います。イエスさまの言葉を私たちの人生の基盤に固く据える時、私たちの人生は嵐を耐え抜く家となります。この地上の生涯で、豪雨や暴風に見舞われようと、しっかりと立っていられます。それは、最後の審判を耐え抜くほどの固い地盤を得
たことになるからです。


 聖書は、神さまの御前にあって、罪に悩む人に対して赦しをもたらします。御子イエス・キリストが私たちの罪のために十字架にかかって死んでくださって、さらに私たちの命のために神さまがキリストを復活させられたことを、聖書は福音として語っています。イエスさまの教えは、この福音によって新しい命を与えられた信仰者が、天の国を目指して揺るがない歩みをするための指針であり、人生の土台なのです。


 人々は、このイエスさまの教えに驚きました。イエスさまは「わたしの言葉を聞け」と言われます。ユダヤ教の教師たち、律法学者たちはそのように神さまの教えを説く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聖書は聖書の言葉であって、それを先祖たちの解釈に従って、このような意味だと教えるだけです。でも、イエスさまは神さまの言葉を自分の言葉として語りました。イエスさまのもっておられる権威は、天の父なる神さまの権威と同等です。だからこそ、それは堅固な岩に例えることが出来ます。


 ただし、人生の揺るがない基盤となる固い岩を、そのようなものと認めて、その上に自分の人生を打ち立てるのには、まず御言葉を注意深く聴き、そして、それを行うことが必要です。「聞いて行う」ことをイエスさまは求めておられるのです。
 イエスさまの説教を聞いた者は大勢おりました。しかし、イエスさまの御言葉を行った者は限られていたのです。


 イエスさまの言葉を聞いて行う、ということは、そこに神さまの権威を認めて、その言葉に従うことを意味します。イエスさまの弟子となって、その教えに学びながら、師の後についていくことです。
 例えば、7章12節に「人にしてもらいたい思うことは何でも、あなたがたも人にしなさい」とありました。聖書には良いことが書いてありますが、それを自分がするのは難しいことです。しかし、イエスさまの言葉をただ聞き流すだけでなく、やってみようと思うだけでも違ってきます。そして、神さまに祈るなら、変わってきます。神さまが変えられるのです。神さまは、その人が出来るようにしてくださるのです。


 イエスさまの言葉をやってみようと思うときに必要なのは信じることです。信じていくと、やってみようかなと思うようになります。
 25節に、雨、川があふれ(洪水)、風とありますが、ある人は、雨とは天からの試練、洪水は地上の困難、風は悪魔の誘惑と、面白く解説していました。私たちはこの世で様々な試練や困難、誘惑に合います。クリスチャンでも同じです。神さまを信じたから試練に合わないことはありません。神さまを信じても、信じなくても困難は同じです。面白いことに25節と27節を見ると、前半は全く同じです。しかし、後半は違います。「倒れなかった」と「倒れて、その倒れ方がひどかった」とあります。聞いてそれを行うか、聞いても行わないかによって大きな違いが生じるのです。
 神さまの言葉を信じ行う者が、岩の上に自分の家を建てた賢い人になり、その人の人生の結末は大きく変わってくるのです。


 礼拝の招きの言葉として、ヤコブの手紙1章22~25節をお読みしました。「御言葉を行う人になりなさい。自分を欺いて、聞くだけで終わる者になってはいけません。御言葉を聞くだけで行わない者がいれば、その人は生まれつきの顔を鏡に映して眺める人に似ています。鏡に映った自分の姿を眺めても、立ち去ると、それがどのようであったか、すぐに忘れてしまいます。しかし、自由をもたらす完全な律法を一心に見つめ、これを守る人は、聞いて忘れてしまう人ではなく、行う人です。このような人は、その行いによって幸せになります。」(ヤコブ1:22-25)


 「岩の上に家を建てる」とは、一見イエスさまの言葉に従って、しっかりと生きるように戒められているように思われるかもしれません。しっかり、強く生きて、嵐が来ても倒れないような家を建てなけれいけない、がんばらなくてはいけないと思ってしまうのです。先週も申しましたが、「○○すれば」「○○したら」とすぐに考えます。そうすれば、岩の上に家を建てる者になれると考えるのです。


 しかし、イエスさまはがんばって立派な人になりなさいとは、言われていません。イエスさまが言われたのは、「(イエスさまの言葉を)聞いて行う者は皆、岩の上に自分の家を建てた賢い人に似ている」と言われ、嵐になっても洪水が起きても「倒れなかった」と言われたのです。
 「岩」の上に家は立てられていました。その「岩」はイエス・キリストです。イエス・キリストは、私たちを救うためにこの世に来られ、人としての苦しみを味わい、悩み最後には、十字架に掛けられました。敵をも愛して死なれたのです。
 そのキリストは、死から甦られ、今も私たちを愛し、受け入れて下さるのです。あの十字架の上で私たちの心の罪、怒りやいらだち、悔しさ、腹立たしさや虚しさ、私たちの全ての罪を背負ってくださり、私たちを受け止めてくださるのです。キリストは私たちを愛しておられます。


 事故で手足の自由を失い、口に筆をくわえて絵画や詩の創作活動を続けていた星野富弘さんが「立っていても、倒れても、ここはあなたの手のひら」と、神さまを讃美しています。 星野富弘さんは絶望的な経験をされながらも、その絶望の中で、自分が力強い神さまの手の中に抱きしめられていることを知り、生きる力と慰めが与えられたのです。


 皆さん、イエスさまは「倒れても大丈夫。私がおまえの岩だ、流されることはない」と、そう約束してくださいます。
 倒れることを恐れなくてもいいのです。いや倒れても大丈夫です。立っていても、倒れても、イエスさまがその手でしっかりと支えてくださるのです。全てをキリストに委ねましょう。キリストがあなたを立ち上がらせてくださいます。


【2024년 12월 8일 주일예배(요약판)】

    “흔들리지 않는 삶의 토대”
               마태복음 7장 24~29절


 “산상 수훈”을 지금까지 읽어왔는데 오늘로 끝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 마지막에 말씀하신 비유는 간결하고 아주 알기 쉬운 내용입니다. 누구라도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인생 설계에 적용시켜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어떤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24절)고 하십니다.
 이 “나의 이 말”이란 구체적으로는 “산상 수훈”의 가르침 전체를 가리키고 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 전체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터전에 굳게 세울 때 우리의 삶은 폭풍을 견뎌내는 집이 됩니다. 이 지상의 생애에서 호우나 폭풍에 휩쓸려도 단단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심판을 견뎌낼 정도의 단단한 지반을 얻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 죄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용서를 가져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나아가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심을 성경은 복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 복음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이 주어진 신앙인이 하늘나라를 향해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을 하기 위한 지침이자 삶의 토대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이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유대교 교사들, 율법학자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설파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성경의 말씀이지 그것을 조상들의 해석에 따라 이런 뜻이라고 가르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권위는 하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권위와 동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견고한 바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생의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 되는 단단한 바위를 그런 것으로 인정하고, 그 위에 자신의 인생을 세우는 데는, 우선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듣고 행하는” 것을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행한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다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에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 가르침을 배우면서 스승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7장 12절에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좋은 일이 쓰여 있지만, 그것을 자신이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흘려듣는 것만이 아니라 해보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꿔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해보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믿다 보면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5절에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라고 쓰여 있는데, 어떤 사람은 비란 하늘로부터의 시련, 창수(홍수)는 지상의 어려움, 바람은 사탄의 유혹이라고 재미있게 풀이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양한 시련과 어려움, 유혹을 만나게 됩니다. 크리스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시련을 당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어려움은 마찬가지입니다. 재미있게도 25절과 27절을 보면 전반부는 똑같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는 다릅니다. “무너지지 않았다”와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듣고 그것을 행하느냐, 들어도 행하지 않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의 삶의 결말은 크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배 부름 말씀으로 야고보서 1장 22~25절을 읽었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곱 1:22-25)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언뜻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잘 살라고 훈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강하게 살아서 폭풍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지어야 한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면”, “○○했으면”이라고 바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는 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모두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셨고, 폭풍이 와도 홍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반석” 위에 집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으로서의 괴로움을 맛보셨고, 고민하시며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원수도 사랑하셔서 죽으셨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받아들여 주시는 것입니다. 저 십자가 위에서 우리 마음의 죄, 분노와 짜증, 억울함, 화남과 공허함,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 주시고 우리를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고로 손발의 자유를 잃고 입에 붓을 물고 회화나 시 창작 활동을 계속하던 호시노 도미히로(星野富弘) 씨가 “서 있어도, 넘어져도, 여기는 당신의 손바닥”이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호시노 도미히로 씨는 절망적인 경험을 하면서도 그 절망 속에서 자신이 힘찬 하나님의 손안에 안겨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갈 힘과 위안을 받고 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넘어져도 괜찮다. 내가 네 반석이다, 떠내려갈 일은 없다”고 그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서 있어도, 넘어져도 예수님께서 그 손으로 든든하게 받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깁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カテゴリー:

投稿日:2024年12月09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