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年02月09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2025年2月9日 主日礼拝 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詩編(시편) 4編 8(7)~9(8)節
〇讃 頌 讃頌歌 14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1 (詩編 17編)
〇讃 頌 讃頌歌 419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8章 23~27節
〇説 教 「絶対的な信頼を持って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400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交 わ 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説教映像をYouTubeでご覧いただけます。
【 2025年 2月 9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絶対的な信頼を持って」
マタイによる福音書 8章 23~27節
今日の聖書箇所は、自ら決断し、新しい世界へと一歩踏み出そうとした弟子たちが、イエスさまに従い、舟に乗り込んで、向こう岸へこぎ出した場面です。
しかし、彼らの舟は嵐に呑み込まれ、沈みそうになります。弟子たちが眠っていたイエスさまを起こし、助けを求めますと、イエスさまは風と湖をお叱りになり、嵐が収まり、湖も凪になりました。弟子たちは、イエスさまが持つ力に驚くという、そのような内容です。
一見すると、イエスさまが病だけではなく、自然界をも支配する力を有する超越者であることを主張しているように思えます。勿論、イエスさまが悪霊を追い出し、病を癒やすだけではなく、自然界さえも従順させる力を持つ、まさに神さまの力を持っておられるというのは、そうなのですが、マタイによる福音書が私たちに教えようとしているのは、それだけではないのです。
「嵐を静める」というこの物語は、マルコによる福音書4章とルカによる福音書8章にも記されています。この二つの福音書においては、イエスさまが弟子たちにいくつもの譬えを用いながら神の国についてお話をするものの、弟子たちがそれをなかなか理解出来ないでいるという文脈の中で、イエスさまが弟子たちを湖の向こう岸につれて行くという話になっています。
そして、イエスさまは嵐の中で怯える弟子たちの無理解を厳しい口調で批判し、「なぜ怖がるのか、まだ信じないのか」と、弟子たちを追い詰め、「非常に恐れて」(マルコ 4:41)と描写するほど震え上がらせたりしています。
しかし、マタイによる福音書においては、弟子たちを叱りつけるのではなく、「なぜ怖がるのか、信仰の薄い者たちよ」(26節)と柔らかな励ましを持って、弟子たちの怯える心に寄り添われるイエスさまの姿が描かれています。
マタイによる福音書8章をここまで読んで来ましたが、病人の癒やしを通して語られてきたのは、「従う」とはどういうことか、真の信仰とはどういうことか、ということでした。今日の聖書箇所もその文脈の中にあって、イエスさまに従うとはどういうことなのかが語られているのです。マタイによる福音書が記された時代、ユダヤ教のみならずローマ帝国からの迫害が激しくなりました。その中に、教会はあったわけですね。イエスさま一行が乗り込んだ「舟」はそのまま教会を指し示しています。弟子たちをはじめ、そこに集う人々には平穏無事な生活が保障されるどころか、イエスさまに従ったがゆえに危険な目に遭わね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なのです。
ですから、25節の「主よ、助けて下さい」という弟子たちの痛切な叫びは、まさに教会の祈りであったのです。この祈りに応えるように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に励ましの声をかけ(26節)、その後に嵐を静めます。これはマルコによる福音書とは逆の順番になっています。つまり、励まし、慰め、愛し合うということが、イエスさまに従う中で、もっとも優先されるべきものだと語られているのです。
先ほど、イエスさま一行が乗り込んだ舟は教会を示していると言いましたが、一般的にも人生を航海に例えることがあります。私たちは大海原を旅するのですから嵐に遭遇することもあるでしょう。ですから、私たちはそうした嵐に備えて出来るだけ沈まない船で旅したいと願うのです。大きなしっかりとした船とは、安定した仕事、より高い地位、そして豊かな富を蓄えることであり、揺るがない人生を歩むためには、大きな船に乗らなければと考えます。そして、自分が築いた船にイエスさまがお乗りくだされば鬼に金棒と考えがちです。しかし、誤解しないよう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信仰をもって生きて行くということは、私たちが築いた船にイエスさまをお乗せするということではないのです。むしろ、その反対で、イエスさまが乗っておられる舟に私たちが乗り込み、旅をするということなのです。23節「イエスが舟に乗り込まれると、弟子たちも従った。」(23節)
イエスさまが乗られた舟は、小さな舟であったようです。小さな舟ですから、少しの風でも舟は揺れ、突風が吹けば簡単に舟は沈んでしまいます。このことが何を意味しているのかと言いますと、イエスさまが乗られた舟でも嵐に遭い、沈みそう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そのため、弟子たちは「なんでこんなことになってしまったのか」と自問し、イエスさまについてこなければよかったと思ったかもしれません。
不思議にもイエスさまはそのような中で眠っておられました。何も起こってないかのように、沈黙されているのです。
弟子たちは慌ててイエスさまを起こし、「主よ、助けてください。おぼれそうです」(25節)と叫びます。この叫びには、イエスさまに対する不満が込められ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イエスさまに従って舟に乗ったら、こんな嵐に遭ってしまっている。それなのに、イエスさまは寝ておられる。「おぼれそうなのに、なぜ、眠っておられるのですか。おぼれて死んでしまってもいいんですか」という不満の叫びです。
それにしても、イエスさまは、なぜ、激しい風と波の中で眠っておられたのでしょうか。それは弟子たちに父なる神さまへの絶対的な信頼、すでに神さまがお働きになっておられるということを身をもって示されたのでしょう。
礼拝の招きの言葉として読みました詩編4編9節に「平和のうちに横たえ、わたしは眠ります。主よ、あなただけが、確かに、わたしをここに住まわせてくださるのです」とありました。また、詩編3編6節には「身を横たえて眠り、わたしはまた、目覚めます。主が支えてくださいます」とあります。旧約聖書においても、苦難の中で寝ていることは、神さまへの信頼のしるしであったのです。
そして、イエスさまの舟に乗り、イエスさまの弟子としてイエスさまと共に生きていくということは、嵐に遭わないということではなく、イエスさまが共にいてくださり、イエスさまが私たちの重荷、苦しみを共に負い、嵐に立ち向かい、嵐を乗り越えさせ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なのです。
それでも、私たちは信仰を持っていると言っても、イエスさまのような神さまへの絶対的な信頼を持つことは難しいと思います。私たちが生きるこの世界では、いつも嵐が吹き荒れています。私たちは弟子たちのように「主よ、お助け下さい」との叫ばずにはおれません。
しかし、イエスさまは、不信仰な私たちを決して見捨てることをなさらず、「なぜ怖がるのか。信仰の薄い者たちよ」と諭し、助けてくださいます。イエスさまは私たちの叫びと祈りに最善をもって応え聞き届けてくださるのです。
皆さん、この世に生を受けた者の人生は、創造主であり父なる神さまの御手の中にあり、即ちイエスさまの舟に乗り、人生の荒波を乗り越えて行くというご計画の中にあるのです。そして、私たちには、風と湖さえもお叱りになり従わせる、この世のありとあらゆるものの主であるイエスさまが共におられるのです。
広島教会という舟にはイエスさまが共におられるから安心して良いですよ、とは簡単に言えません。何が起こるか分かりません。この舟も大きく揺れ動くこともあるのです。その時に、今日の御言葉を思い出して欲しいのです。揺れ動き、叫ぶ私たちと共にイエス・キリストがおられるということを。イエスさまが共にいてくださるのだから、「主よ、助けて下さい」と叫ぶことを繰り返すだけではなくて、それを乗り越えさせてくださるという主の導きを信じる信仰を持ちたいと願います。
時には、挫折し、失敗することもあるでしょう。それでもその失敗から学び、次にはより良い信仰を発揮して、前進しましょう。キリストの弟子として、共に仕えつつ、成長して行きましょう。
【2025년 2월 9일 주일예배(요약판)】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마태복음 8장 23~27절
오늘의 성경 본문은, 스스로 결단하고 새로운 세계로 한 걸음 내딛으려 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배에 올라타고, 건너편으로 나아가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배는 폭풍에 휩싸여 침몰할 위기에 처합니다. 제자들이 잠들어 계시던 예수님을 깨워 도움을 요청하자,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니 폭풍이 잦아들고 호수도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지니신 능력에 놀라워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께서 병뿐만 아니라 자연계까지도 지배하시는 능력을 지니신 초월자임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악령을 쫓아내시고 병을 치유하실 뿐만 아니라, 자연계조차도 순종하게 하시는 능력을 지니신,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폭풍을 잠잠케 하신'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 4장과 누가복음 8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여러 비유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이 그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맥락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호수 건너편으로 데려가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폭풍 속에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무지를 엄하게 꾸짖으시며,“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 라고 제자들을 추궁하여, “심히 두려워하여”(막4:41) 라고 묘사될 정도로 떨게 만들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을 꾸짖기보다는,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 작은 자들아”(26절) 라고 부드러운 격려로 제자들의 두려운 마음에 다가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을 여기까지 읽어오면서, 병자들의 치유를 통해 말해진 것은, “에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도 그 맥락 속에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기록된 시대에는, 유대교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박해가 심해졌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일행이 타신 “배”는 그대로 교회를 가리킵니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평온 무사한 생활이 보장되기는커녕,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위험에 처해야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25절의 “주여 구원하소서” 라는 제자들의 절실한 외침은, 바로 교회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이 기도에 응답하시듯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하시고(26절), 그 후에 폭풍을 잠잠케 하십니다. 이는 마가복음과는 반대의 순서입니다. 즉, 격려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가운데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예수님 일행이 타신 배는 교회를 나타낸다고 말씀드렸지만, 일반적으로도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대양을 여행하는 것이므로 폭풍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폭풍에 대비하여 가능한 한 가라앉지 않는 배로 여행하고자 합니다. 큰 견고한 배란, 안정된 직업, 더 높은 지위, 그리고 풍요로운 부를 축적하는 것이며,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큰 배를 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구축한 배에 예수님께서 타주신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구축한 배에 예수님을 태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예수님께서 타고 계신 배에 우리가 올라타고,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23절)
예수님께서 타신 배는 작은 배였던 것 같습니다. 작은 배이기 때문에 약간의 바람에도 배는 흔들리고, 돌풍이 불면 쉽게 배가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님께서 타신 배도 폭풍을 만나 가라앉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제자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라고 자문하며, 예수님을 따르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침묵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황급히 예수님을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25절) 라고 외칩니다. 이 외침에는 예수님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따라 배에 탔더니 이런 폭풍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신다. “물에 빠져 죽게 생겼는데, 왜 주무십니까? 죽어도 상관없으십니까?” 라는 불만의 외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왜 거센 바람과 파도 속에서 주무시고 계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즉 이미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일 것입니다.
예배부름으로 읽은 시편 4편 8절에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시편 3편 5절에는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고난 중에 잠을 자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배에 타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폭풍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며, 예수님께서 우리의 짐과 고통을 함께 지시고, 폭풍에 맞서고, 폭풍을 이겨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갖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는 항상 폭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주여 구원하소서” 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부족한 우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고,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라고 타이르시며, 도와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외침과 기도에 최선으로 응답하고 들어주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태어난 자의 인생은, 창조주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즉 예수님의 배에 타고, 인생의 거친 파도를 넘어가는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바람과 호수조차 꾸짖어 순종하게 하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히로시마 교회라는 배에는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라고 간단히 말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 배도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때 오늘의 말씀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흔들리며 외치는 우리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시니, “주여 구원하소서” 라고 외치는 것을 반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게 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믿는 믿음을 갖고자 합니다.
때로는 좌절하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실패에서 배우고, 다음에는 더 나은 믿음을 발휘하여 전진합시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함께 섬기며, 성장해 나갑시다.